안녕하세요, 해양생물 전문 수의사 이영란입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 연구소, 울산고래생태체험관,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미국해양포유류센터 등에서 일하며 다양한 종의 해양생물을 야생에서, 그리고 사육 시설에서 만나왔어요. 지금은 플랜오션의 대표로써 해양 생물을 포함해 해양 생태계 보전 관련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는 중이고요. 주변에 널리(!) 알려진 대로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와 같은 고래 덕후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해양생물 대표종인 고래의 종류와 재미있는 특징을 몇 가지 알려 드릴게요.
크기에 따라 - 고래, 돌고래, 그리고 쇠돌고래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35종의 고래류가 발견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요. 고래류(cetacea)는 고래(whale), 돌고래(dolphin), 쇠돌고래(porpoise)가 포함되는데 한국에서는 작다는 의미의 ‘쇠’자를 붙여 돌고래보다 작은 돌고래인 쇠돌고래를 돌고래에 포함 시키는 경우가 많죠.
다 자란 성체의 몸 길이가 5m가 넘으면 고래(whale), 그 보다 작으면 돌고래(dolphin) 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벨루가는 흰돌고래가 아닌 흰고래이며, 범고래와 향고래처럼 고래라고 불립니다. 참돌고래나 큰돌고래는 예상하시는 대로 성체의 크기가 5미터를 넘지 않아요.
우리나라 고래류 중에 돌고래와 고래가 이름 뒤에 붙지 않는 유일한 종이 있는데 바로 상괭이랍니다. 상괭이는 등지느러미가 없는 쇠돌고래인데요. 조선시대부터 기록이 있어 한반도에서 우리와 오래 함께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자산어보의 '상광어'에서 유래됐다는 저 이름은 실제 어민들 사이에서 상쾡이라고 더 많이 불립니다. 한국의 토종 고래이고 주둥이가 납작하며 마치 웃는 얼굴을 하는 것처럼 보여 웃는 고래라는 별명이 붙기도 해요. 얼마 전 상괭이 보전을 꿈꾸며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한 곳이 있었는데 ‘웃는 고래’ 옆에 영어로 ‘smiling whale’ 이라고 표시했더라고요. 굳이 영어로 하자면 smiling porpoise가 맞고, 그보다 범위를 넓혀 웃는 고래류라고 표현하고 싶었다면 smiling cetacea일텐데, 어쨌든 상괭이는 whale이 아닙니다.
형태에 따라 - 수염 고래와 이빨 고래
분류학적으로 고래는 크게 수염고래와 이빨고래로 나뉘기도 합니다. 우리처럼 입 안에 이빨이 있느냐, 아니면 이빨 대신 플랑크톤을 걸러 먹는 고래수염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고래수염은 영어로 baleen plate입니다. 일본어의 수염이라고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서 우리나라 말로도 수염이라고 해요. 케라틴이 주 성분이라는 점은 같지만 우리가 아는 콧수염, 턱수염과는 확실히 다르죠. 흰수염고래는 이 수염판이 흰색이고, 긴수염고래는 수염판이 길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이빨고래는 한 번에 한 마리씩 물고기 사냥을 하는 불편한 방식을 쓰는데요. 이에 반해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플랑크톤을 걸러서 먹는 필터 피딩(filter feeding) 사냥을 하는 수염고래는 이빨고래보다 몸집이 훨씬 커요. 수염고래 중 제일 큰 종은 흰긴수염고래라고도 알려진 대왕고래, 영어로는 블루웨일입니다. 현재까지 보고된 가장 큰 개체가 33m 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생물이죠.
이빨고래 대부분은 다 큰 성체의 몸 길이가 5m를 넘지 않는 돌고래지만, 물 속 3천미터까지 잠수해서 대왕오징어를 잡아먹는 향고래의 경우 15미터가 넘기도 해요. 물범이나 귀신고래 새끼를 사냥하고 블랙-화이트 몸색이 매력적인 범고래도 이빨고래입니다.
이들의 이빨은 종류나 먹이 사냥 방식에 따라 크기나 수, 생김새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어금니는 없어요. 다시 말하면 먹이를 씹지 않고 날카로운 이빨로 찍고 찢거나 끊어 삼켜버리는 거죠. 상대를 공격할 때 쓰기도 합니다.
특징 1 - 바다에 사는 포유류, 고래
이빨고래여도 수염고래여도 고래류는 모두 우리와 똑같은 포유류입니다. 태어나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어 어미의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며, 청소년이 되고 성성숙(sexual maturity)이 일어나면 임신이 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교미를 하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수정란은 자궁벽에 착상이 되고 10개월 이상을 엄마 뱃속에서 탯줄로 영양을 공급받아요. 어미는 진통을 하고 출산을 하고 새끼는 또 다시 어미 젖을 먹으며 상당 기간을 보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물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이 신비롭죠.
특징 2- 폐호흡을 하는 고래
물 위에서 살던 5천만년 전 고래류의 조상은 물속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는데 우리와 똑같이 폐호흡을 해야 하니 숨쉬는 게 꽤나 불편했을 거예요. 처음에는 계속해서 물 위로 콧구멍을 내밀고 숨을 쉬었을테고, 결국 진화를 통해 콧구멍이 머리 위로 올라갔는데 이것을 분기공이라고 부릅니다. 힘을 빼고 가만히 떠있을 때 몸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숨쉬기가 편해졌죠. 깊은 곳까지 잠수를 하고 올라와 몰아 쉬는 큰 더운 숨은 주변에 찬 공기를 만나면 마치 물을 뿜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걸 분기라고 해요. 물속으로 간 지 5천만년이 지났지만 아가미를 만들지 않고 고래는 여전히 폐로 호흡하며 삽니다.
특징 3- 소리로 소통하는 고래
고래는 소수가 다니기도 하고 여럿이 함께, 때로는 수천 마리가 함께 다니기도 하지만, 수염고래든 이빨고래든 서로 끊임없이 소통을 합니다. 공동으로 먹이 사냥 할 때도 필요하고 구애를 할 때도 소통해야 해요. 물 속에서 소통하는 방법 중 개인적으로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 방법이 바로 물속에서 내는 그들의 소리입니다. 혹등고래가 여러 노래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죠. 그 노래는 서로 배우기도 하며 다른 지역에서 그 노래를 배웠다는 보고도 있어요. 수염고래와 달리 이빨고래들은 반향정위라는 방법을 씁니다. 분기공에 도달하기 전 기도에서 소리를 만들어낸 후 앞 이마에 있는 멜론이라는 지방층에서 초음파를 증폭시켜 내보내고, 물체에 맞고 돌아온 음파를 감지하여 깊고 어두운 바다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먹이 사냥도 할 수 있어요. 여러 종류의 소리를 내고 들으며 소통하는 특징 때문에 고래류가 만들어내는 수중 음향을 개체수와 분포를 조사하는데 활용하기도 하는데요, 반대로 인간이 만들어낸 수중 소음으로 인한 민감한 고래가 폐사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특징 4 - 고래의 잠자기
고래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특징이 바로 잠자기인데요. 인간처럼 6시간 이상을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로 잠을 잤다가는 천적에 대비를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숨을 쉬러 물 위로 올라갈 수도 없겠죠. 그래서 뇌가 반쪽씩 잠을 잡니다. 한쪽 뇌만 깨어 있어도 얼마든지 유영하며 호흡도 할 수 있어요.
특징 5 - 고래의 위는 3개
해부학적 특징 중 가장 눈에 띄는 걸 꼽자면 역시 3개의 위! 첫번째 위는 식도의 연장으로 여겨지며 음식 저장의 기능과 물리적 소화가 일어납니다. 두번째 위에 가서야 비로소 소화액이 분비되는 진짜 소화가 일어나죠. 이러한 특징 때문에 죽은 고래류의 첫번째 위에 먹이가 남아 있다면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뭘 먹는지, 그 먹이의 생활사를 안다면 그 고래와 먹이가 속한 생태계의 먹이사슬도 그려볼 수 있어요.
먹이는 또한 죽기 전 동물의 상태도 말해줍니다. 그물에 걸려 숨을 쉬지 못하고 죽은 경우 대부분 위에 먹이가 꽉 차고 가끔 식도까지 꽉 차 있기도 합니다. 그물에 걸리기 전에는 먹이 사냥을 잘 할 수 있었던 건강한 개체임을 뜻하죠. 때로는 쓰레기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한 마리 한 마리 먹이를 타겟 하여 먹는 돌고래가 쓰레기를 먹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양의 물과 플랑크톤을 한꺼번에 먹는 수염고래는 그 안에 섞인 쓰레기를 걸러내는 것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해양쓰레기가 소화관에서 발견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물론 돌고래들이 쓰레기를 직접 먹지 않더라도 미세 플라스틱은 거의 모든 개체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최근 상괭이 부검 연구에서 인하대학교 팀과 미세 플라스틱 검사를 실시했는데 모든 개체의 소화관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죠. 어류나 갑각류, 두족류 등 돌고래들의 먹이에 미세플라스틱이 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죽은 고래가 들려주는 현실 - 고래의 부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